9살 때 곰과 레슬링, 알고도 막을 수 없었던 힘의 진수
9살 때 곰과 레슬링, 알고도 막을 수 없었던 힘의 진수
종합격투기(MMA) 빅리그 일본인 챔피언이 세계 최대 단체까지 정복할 수 있을까?
미국 네바다주 파라다이스의 티모바일아레나에서는 한국시간 12월8일 UFC 310이 열린다. 제7대 UFC 플라이급(57㎏ 이하) 챔피언 알레샨드리 판토자(34·브라질)와 제3·6대 Rizin 밴텀급(61㎏ 이하) 챔피언 아사쿠라 가이(31·일본)의 5분×5라운드 맞대결이 메인이벤트다. MMA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압박을 당하는 쪽보다는 하는 쪽이 무조건 유리하다. 그런만큼 체급내에서 강자로 분류되는 선수는 대부분 본인이 압박하는 경기를 펼치는 경우가 많다. 29전 29승 무패로 커리어를 마친 전 UFC 라이트급 챔피언 '독수리' 하빕 누르마고메도프(36·러시아) 역시 그랬다.
익히 잘 알려져있다시피 누르마고메도프의 최고 무기는 압박형 그래플링이다. 상대를 압박해 더티복싱 싸움을 벌이던가 그라운드로 끌고가 포지션 싸움을 통해 경기를 풀어나갔다. 압박형 그래플링 전법은 종합격투기 1세대부터 통용되던 방식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을만큼 많은 선수들이 구사하고 그 패턴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스트라이커로 분류되는 선수들조차 상대가 자신보다 그라운드가 약하다 싶으면 압박형 그래플링으로 경기를 풀어나가기도 한다. 전형적인 타격가 타입의 미르코 크로캅, 마이티 모가 그래플링으로 한국의 명현만을 잡은 경기가 대표적이다.
현대 종합 격투기선수라면 누구나 알고 누구나 사용가능한 만큼 파훼법 또한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압박형 그래플링을 구사하는 선수가 많은 이유는 이같은 패턴은 단순히 안다고 깨트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완력의 격차나 그래플링 기량 차이가 클 경우에는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뻔히 알면서도 당하기 일쑤다.
파워 그래플링으로 악명 높았던 누르마고메도프
라이트급 역사상 최강의 파이터중 한명으로 꼽히는 누르마고메도프 역시 현역시절 강력한 파워그래플링으로 악명 높았다. 상대 입장에서는 누르마고메도프가 어떻게 나올지 잘 알고 있었지만 알고도 막아내지 못했다. 누르마고메도프와 경기가 확정되면 거기에 맞춰 전략 전술을 짜고 트레이닝 캠프를 치른다.
하지만 연습과 실전은 다르다. 그렇게 준비했건만 실전에서는케이지 구석에서 참담한 무력감을 느끼기 일쑤다. 그와 맞붙었던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랬다. 누르마고메도프는 다양한 기술에 무지막지한 완력을 겸비한 괴물 그래플러였다. 여기에는 어린 시절부터 컴뱃 삼보, 유도, 레슬링 등을 수련한 덕이 컸다.
누르마고메도프는 1988년 9월 20일 다게스탄 공화국 수마딘스키 지역의 실디 마을에서 아비르 민족으로 태어났다. 투기 종목 코치인 부친 압둘마납 누르마고메도프는 본인의 집 1층을 체육관으로 바꾸어 제자들을 가르쳤고 자연스레 아들인 누르마고메도프도 훈련을 지켜보며 격투기에 대한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9살때 곰과 레슬링을 하며 훈련(?)하던 영상은 지금까지도 각종 커뮤니티 등에서 돌아다닐 정도로 화제를 모았다. 2008년 9월에 MMA 무대에 정식 데뷔했는데 한달도 안되어 4승을 기록했다. 10월 11일에는 3명의 상대를 패배시키며 'Atrium Cup' 토너먼트 챔피언 자리에 올랐다.
데뷔 때부터 이미 어느 정도 레벨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러시아, 우크라이나 무대 등에서 16연승을 달리자 UFC에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6경기 계약에 성공하며 본격적으로 빅무대에서 활약하기 시작한다. 이후의 결과는 알려진 것처럼 연전연승을 기록한 끝에 체급을 모두 정리하고 무패로 커리어를 마감했다.
보는 재미 덜하다? 누르마고메도프는 달랐다
어릴 때부터 레슬링을 바탕으로 유도, 컴뱃삼보를 수련했고 거기에 더해 MMA 선수가 된 이후에는 주짓수까지 보강한 케이스답게 누르마고메도프의 그래플링은 기술적으로 약점을 찾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디 그뿐인가. 힘도 매우 강해서 설사 상대가 기술적으로 받아치려해도 완력으로 압살해 버리기 일쑤였다. 체력 또한 아주 좋았다.
보통 레슬러 스타일의 선수가 압박형 그래플링 일변도로 나오면 관중들 사이에서 야유가 터져나오는 경우가 많다. 보는 재미가 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르마고메도프는 달랐다. 대부분의 공격이 그래플링 압박임에도 재미있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래플링 상황에서 매우 적극적이었던 이유가 크다. 보통 그래플링 압박을 주무기로 하는 선수들같은 경우 유리한 포지션을 잡으면 움직임을 크게 가져가거나 변화를 자주 시도하지 않는다. 자칫 상대에게 좋은 포지션을 빼앗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플링 스킬에 자신이 있었던 누르마고메도프는 매우 부지런하게 움직였다. 니온밸리를 위시해 가드 패스, 크루시픽스, 파운딩 등 온갖 기술을 쉴 새 없이 몰아쳤다. 상대 입장에서는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라운드 초반에 그라운드로 끌려가 공이 울리기 전까지 옥타곤 바닥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대가 대다수였다.
얼이 빠진 표정으로 자신의 코너도 제대로 못 찾아가는 선수도 있었다. 스트라이커는 물론 주짓떼로, 레슬러 등 같은 그래플러들조차 평등하게(?) 힘을 쓰지 못했다. 안 넘어지는게 최선이었겠지만 누르마고메도프는 테이크다운에 있어서도 스페셜리스트였다. 마음먹고 넘겨뜨리지 못한 상대가 없다.
거리가 좁혀졌다 싶으면 어렵지않게 상대를 넘겨뜨려 그라운드 지옥으로 끌고간다. 일단 대부분의 상대를 힘으로 압도한 상태에서 상하체를 고르게 잡고 흔들어주는지라 버티어내기가 어렵다. 총알같은 태클은 발목, 무릎, 허리 등 부위를 가리지 않고 날아들며, 클린치 싸움서 중심을 흔들어주는 기술도 일품이다.
상대는 한번을 막아내기 위해 힘을 몰아쓰는데 누르마고메도프의 괴력 연료는 좀처럼 고갈되지 않는지라 장기전으로 가게 되면 격차가 확 벌어진다. 에밀리아넨코 표도르, 앤더슨 실바, 스티페 미오치치 등의 경우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 시대를 풍미한 슈퍼 파이터라도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먹으면 전성기가 꺾인다. 밑에서 치고올라오는 젊은 선수들에게 잡아먹히기 일쑤다. 그런 점에서 누르마고메도프는 영리했다. 30대 초반의 한창때 은퇴를 선언하며 무패로 커리어를 마감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