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2016시즌을 앞두고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2년 700만 달러 계약을 맺었던 김현수는 시범경기부터 고난을 겪었다. 선수 동의 없이 마이너리그로 내려보낼 수 없는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가졌던 김현수는 시범경기에서 부진한 활약을 펼쳤다. 구단은 언론플레이와 고의적인 라인업 제외로 전력 외 취급을 하며 김현수를 압박했다. 그러자 메이저리그 선수노조는 볼티모어 구단의 행태를 예의주시하며 선수의 권익 보호를 위해 사태에 개입할 수 있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선수노조의 개입이 가시화되자 볼티모어 구단은 김현수의 마이너리그행 종용을 포기하고 개막 엔트리에 포함시켰다. 선수 노조의 파워를 체감할 수 있던 장면.

#2. 올해 메이저리그 최고 유망주로 평가 받고 있는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토론토)는 구단의 ‘의지’만 있다면, 개막전 엔트리에 포함될 수 있었다(현재는 부상 중이다). 하지만 구단은 게레로 주니어에게 개막전 엔트리의 영광을 안겨줄 생각이 1도 없었다. 상위 유망주 중 한 명인 일로이 히메네스(시카고 화이트삭스)도 마찬가지. 구단은 그에게 마이너리그행을 통보했다. 데뷔 날짜를 늦춰서 ‘서비스 타임’을 줄여 FA 자격 행사를 1년 더 늦추려는 구단들의 ‘꼼수’다. 그러자 올해 580만 달러의 연봉을 받는 휴스턴 투수 콜린 맥휴는 작심하고 구단들의 생태를 비판하는 말들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그래도 구단은 아직 데뷔도 안한 히메네스와 최대 8년 7750만 달러의 연장 계약을 체결했다).

#3. 지난해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을 수상한 블레이크 스넬(탬파베이)은 지난해 연봉 55만8200달러에서 고작 1만5500달러 오른 57만3000달러에 재계약 했다. 노사 합의에 따라 3년차까지 연봉 조정 신청 자격 없이 구단의 일방적인 연봉 계약 통보를 받아야 하는 저연차 선수들인데, 스넬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MVP급 성적을 남긴 알렉스 브레그먼(휴스턴) 역시 연봉은 68만4000달러로 MVP급 연봉에는 한참 못미친다. 선수 노조는 기존 노사 협약을 존중하면서도, 선수들이 제대로 된 가치를 평가받지 못한 부분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향후 2021년에 있을 새 노사 협약 때는 강한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예상이 다분하다.

이처럼 메이저리그는 선수 노조의 힘이 막강하다. 구단, 사무국과 동등한 입장에서 노사 협상에서 발언권을 갖고 대표성을 인정받고 있다. 그 결과 저연차, 저연봉 선수들의 복지 혜택과 기본권 보장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지난 2000년 출범해 올해로 19년을 맞이하는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이하 선수협)는 그에 비하면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프로야구 초창기에 비하면 구단과 선수의 ‘갑을 관계’가 어느 정도 완화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저연차, 저연봉 선수들, 그리고 베테랑 선수들을 보호하는 제도는 부족하다.

여기에 선수협은 지난 2017년 이호준 회장의 사퇴 이후 회장 자리는 2년 동안 공석이었다. 그 사이 FA 제도의 문제점이 더욱 부각됐고, 저연봉, 저연차 선수들의 처우 개선은 제자리 걸음이었다. 선수들 간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극에 달했다. 그리고 선수협은 컨트롤 타워가 사라진 2년 동안 선수들의 권익보장 단체가 아닌 기득권을 가진 ‘부자 선수들의 이익집단’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썼다. 이호준 회장의 사퇴가 ‘메리트 부활’을 요구하는 발언으로 인해 촉발됐고, 고액 FA 선수들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은 극에 달했다.  

지난 주 선수협은 2년 공백을 채워줄 새 회장 선거를 마무리 했다. 모두가 입후보를 꺼려하자 구단별로 연봉 순위 상위 3명을 선정해 ‘강제로’ 입후보 하도록 하는 촌극이 빚어졌다. 결국 현재 KBO리그 최고 연봉(25억원)의 이대호가 새로운 선수협의 수장으로 선출됐다.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받은 대표성을 지닌 회장이다. 

‘최고 연봉’ 선수인 이대호는 이제 KBO리그 전체를 대표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2년간 리더십 부재로 표류했던 선수협에 산적해 있는 현안들을 해결해야 한다. 이대호는 일단 선수협 본연의 설립 취지를 되새겼다. 최근의 선수협을 향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듯 그는 “이익만 생각하는 것보다 팬들을 먼저 생각하겠다. 선수협이 만들어진 것은 2군 선수들, 젊은 선수들 권익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며 “나 역시 2군 생활을 해봤고, 음지에서 고생하는 선수들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최고 연봉 선수인 이대호가 선수들의 대표로 전면에 나선 현재 상황에서 선수협과 이대호가 떠올려야 하는 말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저연봉,저연차 선수들을 위해 최고 연봉으로 혜택을 받고 있는 이대호가 후배들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진정성과 대표성은 더욱 부각될 터. 롯데 양상문 감독은 “어쨌든 회장의 중책을 맡았으니 다른 회장과 다른 모습을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야구 외적으로 신경 쓸 것이 많을텐데 ‘잘 극복하겠다’고 하더라”면서 “하지만 후배들을 위해서 의미 있는 족적을 남기는 일이기도 하다. 잘할 것이다”며 이대호에 응원 메시지를 전했다. 

신임 회장 이대호의 어깨가 무겁다. 과연 앞으로 2년 임기 동안 모두가 웃을 수 있고 선수들 간의 빈부격차를 줄이며 ‘상생’할 수 있는, 이익단체가 아닌 진정한 ‘권익 단체’의 선수협을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