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토군 검증 뉴스 우리는 왜 이강인을 기다리지 못할까
토토군 검증 뉴스 우리는 왜 이강인을 기다리지 못할까
이강인은 한국축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기대주로 꼽힌다. 국내를 벗어나 외국에서 성장한 선수다. 스페인 프로축구 발렌시아CF 소속으로 뛰고 있다. 팬들은 그를 보며 과거의 박지성을, 현재의 손흥민을 그리며 가슴 깊은 희열을 느낀다. 한국축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전설의 탄생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그 역시 팬들의 기대감을 충족했다. 지난해 1군과 동행한 프리시즌 평가전에 꾸준히 출전하더니 같은 해 10월 스페인 코파 델 레이(국왕컵) 에브로와 32강전에서 만 17세 327일의 나이로 유럽 데뷔전을 치렀다. 동아시아인으로는 구단 최초로 1군 경기를 소화했고 동시에 최연소 외국인 선수 출전 기록을 세웠다.
성장은 예상보다 빨랐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아시아 선수 최연소로 데뷔전을 치르더니 급기야 2군 딱지를 뗐다. 지난달 공식적으로 1군에 등록된 것이다. 허리를 구성할 미드필더들이 줄부상을 당해 2군에서 콜업할 선수를 물색하던 중 내부평가전에서 인상 깊은 활약을 펼친 이강인이 눈에 띄었다.
1군 합류와 함께 서서히 입지를 넓혀갈 것으로 예상했으나 성인선수들과의 격차를 좁히긴 쉽지 않았다. 부상 선수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복귀했고, 이강인이 뛸 자리는 없었다. 이달 치른 5경기에서 단 한 번도 그라운드를 밟지 못했다. 명단에서 제외된 것만 2차례다.
마르셀리노 가르시아 토랄 감독은 냉정하게 현실을 내다봤다. 지난 10일 프리메라리가 경기를 앞둔 기자회견에서 최상의 전력으로 나설 것을 강조했다. 이강인의 출전에 관해서도 “주전 자격을 증명한다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최상의 전력으로 경기에 임해야 한다. 우리 팀이 17세의 어린 선수가 연달아 경기에 나설 수준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마르셀리노 감독의 발언은 충분히 현실적이며 이해가 된다. 선수단 부상 등의 별다른 이상기류가 없다면 중하위권 팀들이 10대 유망주들을 기용하는 시점은 보통 30라운드가 넘어서부터다. 강등권 전쟁에서 한숨을 돌릴 수 있으며 유럽대항전 출전을 노리기엔 이미 상당히 격차가 벌어진 팀들. 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남은 시간을 다음 시즌을 위한 시험대로 삼는다. 유망주 활용과 시즌 중반기까지 시도해보지 못한 다양한 전술적 실험이 그렇다.
이런 이유로 모호한 전력의 팀들은 이 시점에서 종종 객관적 전력상 약체인 팀들에 충격패를 당하거나 우승경쟁을 하는 강팀들에 대패하는 경우가 많다. 승리해도, 패배해도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적다. 뚜렷한 동기부여가 사라진 정황이라고 볼 수 있다.
발렌시아는 다르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가 현재 24라운드까지 종료된 시점에서 그들의 동기부여는 충분하다. 그들의 이번 시즌 현실적인 목표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얻어내는 것이다. 진출권이 주어지는 마지노선인 4위 세비야(승점 37)와의 승점 격차는 5점에 불과하다. 남은 경기에서 반등한다면 추격이 가능한 사정권이다. 시즌이 끝난 시점에서 최소한 유로파리그 출전권을 확보할 수 있는 7위에는 위치해야 한다.
유럽대항전의 출전 여부는 다음 시즌 구단의 행보 전체를 판가름한다. 금전적인 이유다. 유럽대항전에 출전할 경우 그렇지 않을 때 보다 구단 광고료와 시청 중계권료, 관중 수입 등이 막대하게 올라간다. 현시점에서 실험적인 선택을 할 수 없는 마르셀리노 감독의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래서다. 이강인과 같은 어린 선수에게 기회를 주길 강요할 순 없다. 최근 리그에서 3연속 승리를 챙기지 못하며 침체돼 있는 팀 분위기도 한몫했다.
장기적으로 이강인의 많은 출전을 위해서도 발렌시아의 선전은 필요하다. 유럽대항전에 참가해 경기 수가 많아져야 이강인과 같은 어린 선수들의 출전 폭이 넓어질 수 있다. 이번 이강인 1군 콜업에서 알 수 있듯 발렌시아의 스쿼드는 넓지 않은 편이다. 그들의 재정을 고려해본다면 오는 여름 이적시장에서도 크게 지갑을 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빡빡한 일정 속 부상자 관리와 체력 안배는 필수인 만큼 경기수가 많아진다면 1군에 정식 등록돼 능력을 인정받은 이강인에게도 기회가 돌아갈 수 있다.
이강인에겐 기다림이 필요하다
기다림의 미학이 필요하다. 이강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를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시아 최연소 프리메라리거를 보유하고 있다는 팬들의 자부심은 이해하지만, 그 기대감이 선수의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 성인 프로 무대에 데뷔한 지 채 4달밖에 되지 않은 선수임을 잊어선 안 된다.
FC바르셀로나 유소년팀 출신이었던 이승우 역시 일찍이 대중의 시야 안에 강제로 들어와야 했던 부담감을 호소하기도 했다. 현실에 앞질러 기대가 자리하는 상황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발적인 지나친 기대감은 피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강인을 바라보는 팬들과 일부 언론의 마음이 너무 앞서가고 있다는 마음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때부터 그랬다. 당시 성인 무대 데뷔도 하지 않은 그의 차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심지어 그때 이강인은 아직 1군 무대 데뷔조차 하지 않은 때였다.
지금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파울루 벤투 감독에게 곧바로 3월 A매치부터 이강인을 선발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소속팀에서 자리를 잃은 이강인에게 지금 태극마크를 달아준다면 훨씬 긍정적인 상황을 가져올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팬들은 대표팀 첫 발탁으로 자신감을 쌓으면 소속팀으로 돌아가 반등을 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벌써 그를 기성용 포지션에 넣어 전력을 분석하는 매체도 생겼다.
소속팀에서의 적응이 먼저다. 벤투 감독으로서도 경기에 나서지 못하는 이강인을 차출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 이강인이 공식적인 1군 무대에 포함되긴 했지만, 발렌시아로선 부상자가 속출했던 포지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임시방편이었다. 아직 소속팀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했다. 시즌 종료까진 발렌시아에서 주전 경쟁에만 집중하는 것이 이강인에게도 중요하다. 이강인 나이에 자국 대표팀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들은 이미 소속팀에서 충분히 입지를 다지며 ‘유망주’ 딱지를 완벽하게 받아낸 후였다.
또한 발렌시아 1군 선수 중 러시아의 데니스 체리셰프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자국 대표팀에서 전력 외로 평가받는 선수들이다. 이들 모두 소속팀에만 모든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는 뜻이다. 가뜩이나 출전시간에 어려움을 겪는 이강인이 대표팀 경기를 소화한 데 이어 시차 적응까지 호소한다면 그의 자리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강인에 앞서 국내 K리그 선수들을 돌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유럽이라는 선진축구에 가려 특정 선수에게만 매몰되는 오류는 없어야 한다. 2019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시안컵에서 전승 우승을 차지한 카타르 선수단 중 현역 유럽파는 단 한 명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자국 리그 출신들로 구성됐다. 유럽리그 선수들의 경험과 기술도 중요하지만, 대표팀 내 자국 리그 출신 선수들의 경쟁력 향상도 중요하다. 향후 K리그의 성장을 위해서도 그렇다.
K리그에도 ‘긁지 않은 복권’으로 평가되는 선수들은 충분하다. 전남의 한찬이와 성남의 김동현도 훌륭했던 지난 한 해를 보냈다. 한승규, 장윤효, 김준형은 아시안컵을 앞두고 울산 훈련에서 벤투 감독에게 직접 점검을 받았다. 벤투 감독이 잘 알고 있다는 뜻이다. 전술 구상하는 데도 이들을 활용하는 편이 훨씬 유리하고 소집 일정을 조정하기도 쉽다.
특히 한승규는 지난 시즌 K리그 영플레이어상을 받으며 전북 현대의 차세대 핵심으로 떠오른 선수다. 이들의 공통점은 대부분 소속팀에서 입지를 확고히 했다는 데 있다. 세대교체에 앞서 새로운 실험을 하고자 할 때 우선순위를 정하자면 이들이 이강인보다 먼저다.
축구 역사에서 대중들의 과한 바람을 이기지 못해 꺾였던 꽃은 많았다. 아직 이강인은 골격이나 근육구조에서도 완성되지 않은 어린 나이다. 이제 막 발걸음을 떼기 시작한 레이스 시작점에서부터 바톤을 내밀며 오버페이스를 강요할 필요는 없다.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긴 하나 발렌시아에서 이강인의 미래는 충분히 밝다. 구단이 측정한 8000만 유로(약 1018억원)의 바이아웃이 이강인 잠재력 측정값인 셈이다. 그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지금은 그저 방관자의 입장에서 이강인의 성장을 기다릴 필요가 있다.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도 팬들이 할 수 있는 응원이다. 소속팀에서 뛰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첫 번째다. 대표팀 차출은 그 다음 문제다.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로 나무를 키울 수 없다. 결국 나무에 생명력을 주는 것은 매일 뜨고 지는 태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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